산악신앙의 다른 말은 산신숭배다. 산신숭배는 상고시대부터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있어 왔던 제례의식이다. 한반도에서도 예외 아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첫 작업이 산신숭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기록이 제사조에 고스란히 나온다. 신라는 삼산(三山) 오악(五嶽) 이하 전국 명산대천에 지내는 제사를 대사·중사·소사로 나눴다. 대사 삼산은 경주 주변에 있는 나력, 골화, 혈례산으로 수도 서라벌을 방어하기 위한 호국신의 성격이 강했다. 중사는 오악 이하 사진(四鎭)·사해(四海)·사독(四瀆), 그리고 ‘기타’로 구분
남해 금산, 한국 최고의 기도처로 꼽힌다. 한국의 3대 기도처라 하면 남해 금산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낙가산 보문암이다. 여수 향일암을 포함해서 4대 기도처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으뜸 기도처가 남해 금산 보리암이다. 이들은 모두 해수관음 기도 도량이다. 산신 기도처로서는 설악산 봉정암과 팔공산 갓바위 기도처를 으뜸으로 꼽는다. 때로는 영축산 통도사 자장암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산신 기도처와 해수관음 기도처를 총망라해서 꼽는 한국 최고의 기도처는 금산 보리암과 설악산 봉정암, 팔공산 갓바위라 한다. 해수관음이든 산신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신라 김유신 장군은 대관령산신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산신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산신의 보편성과 일반성 측면에서 김유신 장군이 산신으로 좌정한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김유신 장군이 전혀 연고가 없을 것 같은 강릉 대관령의 산신이 됐다 하면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다. 산신의 지역성과 특수성 측면에서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법하다. 그가 왜, 어떻게 대관령산신이 됐을까? 그는 삼국통일 직후인 673년 사망한다. 그런데 그가 언제 대관령산신으로 좌정했을까? 대관령 주민들이 어떻게 그를 무
계룡산 산신은 누구일까? 남성일까, 여성일까? 통일신라시대의 오악인 지리산은 구체적인 산신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같은 오악이었던 계룡산에는 왜 나타나지 않을까? 계룡산 산신은 언제부터 유래했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계룡산 일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산신이나 계룡산 관련 전문가라는 전문가는 모두 찾아서 만났다. 산신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알 수 없었다.하지만 매우 중요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전에 소개한 산신과는 또 다른 산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소득이었다. 이른바 ‘산신의 원형’성에 관한 내용이
고대사회의 도시 형성은 반드시 산과 강(=물)을 끼고 있어야 한다. 외침을 막거나 피할 수 있는 산과 거주하는 데 필수품인 물은 생존의 필요조건이었다. 여기에 정착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야가 있다면 완벽한 지형조건이다.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더욱이 3개의 하천과 강이 자주 범람하면서 형성된 평야는 그야말로 옥토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 살 만한 땅이었다.드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풍부했다. 부락이 생겨났다. 각각의 성씨가 부락을 대표했다. 6개의 성씨가 시조가 된 부락이며,
산악신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를 비롯한 많은 고대 문헌에 나타난 산악신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사상이다. 고대 국가들은 산에서 제사를 지내며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고, 통치권자의 정당성을 부여받기도 했다.조선총독부가 1940년쯤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지는 ‘부락제(祭)’를 조사한 마지막 기록으로 산신제 176, 동제 126, 서낭제 99, 여신제 20, 부군제 11개 등 도합 432개로 집계됐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민속신앙에 대해서 정확한 통계가 나온 적이
매년 봄만 되면 미세먼지와 황사가 기승이다. 올해는 유독 예년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인간의 환경훼손에 대한 환경의 역습이 이미 시작된 듯하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급격한 도시화로 엄청난 편리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인간은 원래 숲 속에서 살았다. 도시에서 생활한 기간은 인류전체 기간과 비교하면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사바나이론(Savana theory)’이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은 약 700만 년 전부터 숲에서 수렵과 채취생활로 살아왔다고 주장한다. 숲에서 탈출한 시기가 대략 1만년에서 5,000년 전부터라고 추정한다. 농경과